선배들이 그랬다. 고민이 많으면 산에 한번 올라 보라고, 비가 그치면
하릴없이 산을 걸어봐야 겠다. 요즈음에 고민이 너무 많다. 군전역 이후로 계속하게
된 원론적인 고민들과 새로이 생겨나는 고민들. 인생, 요리, 목표, 가치관, 열정들이
정체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무기력증을 얘기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미, 무기력 하니깐.
고민들 중 대부분은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제일 큰 고민은 내가 과연 가야할 길이 이길이 맞는지
계속 의심이 된다. 나 스스로가 나에 대해 잘 몰라서 착각을 하는
것 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맞는지는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겠다. 플러스 고민 하나. 고갱은 45세가
되어서야 자신의 길은 그림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돈, 명예, 가족도 버리고
방랑하며 그림만 그렸다. 나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자신이 없다기 보다도
애초에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고갱하고 대판싸우고 분에 못이겨서 자기 귀를
홧김에 잘라버린 똘아이가 고흐다.)
스승의 날인 오늘 학교에 갔었다. 지금 내 몸 상태를 생각하면 병원에서 물리치료 받고 집에 와서 요양을 해야 맞지만, 무엇인가에 홀린듯이 학교에 갔다. 새벽에 귀가 했음에도 집에 들어가서 한 숨도 못 잤다.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한 것이 겠지만 왠지 지금 자면 일어나지 못 할 것 같아서 뭔가를 놓칠 것 같아서 침대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았지만 잠이 들지 못 했다. 스스로도 생각하고 질문한다. 그까짓 것들 하나 혹은 스무개 정도 놓치면 안돼? 놓치면 죽니? 모르겠다. 죽지는 않겠지만 놓치기 싫다. 기호의 문제인가? 플러스 고민 하나. 지금 생각해 보면 aT센터에서 열리는 요리경연대회가 보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니 반겨주는 이가 한명도 없다. 새삼 느꼈다. 내가 더이상 학생이 아니란 것을.. 재학생 후배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에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모르겠다. 하지만 반겨주는 이가 한명도 없다는 것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더라, 재학시절 서스럼 없이 말을 섞은 후배도 없었고 그들과 특별한 추억 또한 없었다. 내 재학시절은 추억이랄것도 없이 흐미하지만 굳이 뽑아보자면 졸업작품 정도? 그래서 내가 후배들에게 졸업작품에 대애 애착을 갖는 것일까? 아니, 집착을 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플러스 고민 하나. whatever 2학년 재학생들과 aT에 가서 경연대회를 보았다. 내가 수준이 높아진 것인지 요리에 대한 열정이 식은건지 알 수 없지만 오늘따라 왠지 시시해 보였다. 스스로 건방짐을 느꼈다. 분명히 저번에 보았던 작품들보다 수준은 높아졌건만. 눈만 높아진 것인가? 선배들도 그랬을까? 40대가 되기전에 성공하고 싶다고? 요즘 내가 그렇다. 고생은 하기 싫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싶고 성공은 하고싶고 대외적으로 이름빨이(인지도) 있고싶고 죽어도 꼰대는(보수) 되기싫고 고귀하게 고아하게 귀족처럼 엘리트처럼 살고 싶다. 고등학교때 꿈이 시골에서 택시운전 하면서 허리잘록한 과부랑 오손도손 살고 싶었던 것에 비하면 참 때가 많이 묻었구나 싶다.(덕분에 나는 담임, 학년부장, 교감, 교장과 차례로 면담했고 부모님이 학교로 불려오셨다.) 지금과 고딩때 사이에서는 하루에 수십번씩 꿈이 바뀌었다. 여행사진작가, 등산가, 비평가, 크루즈선장, 어부, 선원, 프로그래머, 카운셀러, 바리스타, 바텐더, 주유소 사장, 신분/방송기자, 지리학자, 패션모델, 포르노 배우, 연극배우, 빌딩주인, 국정원, 테러리스트, 군인, 노조위원장, 택시기사, 헬기조종사, 카피라이터, 종교인, 무역가, 농/목장주, 형사, 영화감독, 돈많은 백수, 고고학자, 플레이 보이 등등 참 많았다. 몇가지 빼고는 조금씩 맛을 봤다. 명인 장사익씨도 이것저것 찔러보다가 가수가 되었다지?(아니던가? 고갱같은 케이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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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부쩍 03년도에 땅끝의 사찰에 묵어가며 여행을 다녔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 만났던 인연의 끈들과 지금에 들어서야 놓쳐버린 인연의 끈들에 대한
늦은 후회도 밀려온다. 이런 내 후회가 파도라면 지금의 알 수 없는
고민과 상념들은 파도가 백사장에 남기고 간 포말 찌꺼기 정도가 되리라. 그곳에서
만나 군대에서 헤어진 여자친구가 생각난다. 이름은 기억나지만 생년월일이 기억나지 않아서 싸이월드에서도
찾지를 못한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달마산 미황사 응진각에서 보는 해넘이는 일경인데,
그 일경을 보고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사라 코너가 회상하는 인류 최후의 날'이
떠오른다는 해괴한 말들을 서슴없이 토해내는 여자였다. 그래서 좋아했다. 당시 내 주위에는
주관이 뚜렸한 여자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쾌활하고 유쾌하고 진지하며 듬직했기에 또래의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다.(그때는 날씬했다.) 고등학생에서 부터 대학원생까지 두루두루 만났다.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이는 없었지만.. 공교롭게도 군입대를 앞두고 있던 나는 모든 것에
조급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당시 부모님은 군필 후에는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올 수 있게
안배를 해준다고 했다. 너를 위해 모아논 자금이 있다면서.. 생각해보니 입대전의 자식놈에게
무슨말을 못하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군대에 가게되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혹은 소원하게 될 녀석들에게
'나랑은 절교야!'하면서 지랄쌩쑈를 떨었으니.. 아직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XXX 절교사건'이라며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녀와의 관계에서도 조급이 모든 파탄의 원인이 되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를 계속 만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Yes', 'No'로만 답해야하는 무리한 확답을
요구했었다. 당시 한남대 졸업반이였던 그녀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많이 났을 것이다. 한치
앞도 못보는 것이 사람의 일인데.. 그녀는 확답을 내려주지 않았고 난 04년
5월 입대했다. 05년 6월 9일 그녀는 영국으로 패션유학을 떠났다. 그 후
나는 06년 3월이 될 때까지 휴가를 한번도 안갔다. 그리고 5월에 전역했다.
전역후 프랑스를 갈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현실은 필리핀도 못 갔다. 대신
여자를 만났다. 그녀와 판박이로 닳은 여자를.. 이런 만남은 대게 오래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상처만 되며 끝이 좋지 못하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였다. 그래서 나름의 룰을 세웠다. 나와 키차이가 많이나고 나보다 연상은 만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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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많으면 예술가가 된다고 했던가? 세안을 마친 물이 소용돌이 치며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세면대가 지금의 내 머리속이며 세면대에 가득찬 탁수는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갖가지 고민같다. 허나, 다른 점이 있다면 마개가
달려있는 수챗구멍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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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를 마시고 쓰는 글이랑 맥주, 양주, 칵테일을 마시고 쓰는 글이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 오늘은 잭콕, 블랙러시안, 러스트네일, 마가리타에 깐풍기에 피쳐를
마시니 머리가 뱅글뱅글 돈다.(돈이 많은게 아니라 집에서 만들어 마십니다. 저 개털입니다.
오해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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